본문 바로가기

감상문

나니아 연대기 :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책 그리고 캐스피언 왕자


서점에 가서 서가들을 둘러보다 보면 검은색 커버에 황금색 글씨로 나니아 연대기라고 쓰여진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책이 하나있다. 법학도들이 늘 들고다니는 형법, 민법서적이나, 공대생들을 괴롭히는 전공서적들 보다 더 무겁고 큰 7센티미터의 두께 B5크기의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서가의 윗부분에 국외 소설이란 판넬만 없다면 정말 어느나라의 연대기일지도 모를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책을 들춰보다 보면 동화책이구나라고 깨닫게 해주는 삽화들이 있고 이 두꺼운 책이 사실은 7권의 책이 모여진 합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실 나니아 연대기는 나니아 나라 이야기라는 동화책으로 출판된 바 있으며 2005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개봉을 하자 영화와 함께 마케팅을 위해 책의 제목을 바꾸고, 전 연령층을 타겟으로 재 출간되었다. 책의 경우 시간적 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으나 영화는 C.S. 루이스가 책을 써낸 순서대로 영화화 되고 있어서 시간적 순서대로 각각 2번째, 4번째, 5번째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가 개봉을 하였거나 앞두고 있다.

 

판타지 소설이 영화화 된 경우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이 유명하고, 3대 판타지 명작의 작가들인 C.S. 루이스와 J.R.R. 톨킨은 서로 편지들 주고 받으며 집필중인 소설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둘의 소설을 읽게 되면 분위기가 극을 달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J.R.R. 톨킨의 호빗반지의 제왕은 상당히 무미 건조하며 쉽게 다가가기 어려움이 느껴지는 반면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동화적이면서도 교훈적인 내용이 양껏 담겨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C.S. 루이스가 나니아 연대기를 집필한 것도 2차 대전 당시 그의 집으로 피난 온 4명의 아이들을 위해 들려주던 이야기를 엮은 것이니 말이다.

 

나니아 연대기의 2캐스피언 왕자가 작년 이맘때 개봉을 했었다. 1편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 이어 앤드류 아담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4남매(수잔 역:안나 포플웰, 피터 역: 윌리암 모슬리, 에드먼드 역:스캔더 키즈, 루시 역: 조지 헨리)가 그대로 출연을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화 속의 현실 세상은 1년이 지난 반면 나니아 나라는 수백 년이 지나 또 하나의 꽃미남 벤 반스(캐스피언 왕자 역)가 주연으로 참여했다는 것 정도 일까?

 

2편인 캐스피언 왕자 1편에서 하얀 마녀를 몰아내고 현실에 복귀한 4남매를 캐스피언 왕자가 뿔피리를 불어 다시 나니아 나라로 불러오면서 시작된다. 뿔피리 때문일까 1편에서는 옷장을 매개체로 나니아 나라로 들어갔다면, 이번엔 사람들이 많은 도심의 한복판 지하철 역사에서 순식간의 나니아의 해변으로 순간이동이 된다. 그곳에서 다 허물어진 성을 발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떠났을 때로부터 수 백년이 지났음을 알게 된다. 신기하게도 멀쩡하게 남아있는 과거에 사용했던 무기들을 가지고 나니아를 돌아다니다 나니아 주민들과 함께 있는 캐스피언 왕자를 만나게 된다. 캐스피언 왕자는 텔마르 인 왕자로 삼촌 미라즈가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왕이 되었으며, 예전과 같이 나니아 주민들의 화합된 세상을 꿈꾼다. 주인공 4남매와 캐스피언 왕자, 생쥐, 난쟁이, 켄타우로스 등이 포함된 나니아 주민들과 미라즈 왕의 군대는 커다란 전투를 치루고, 사자왕 아슬란과 움직이는 나무 숲, 강의 신의 도움으로 미라즈 왕의 군대를 제압하고야 만다. 아슬란은 텔마르 인들을 현실세계의 어느 무인도로 보내어 그곳에서 생활하게끔 하고 나니아 나라를 캐스피언 왕자와 주민들에게 되돌려준 4남매 역시 다시 현실세계로 복귀를 한다.

 

영화는 성인관람객을 고려하였는지 혹은 상업영화의 특성 탓 인지는 몰라도. 종교적이고 교훈적인 면보다 액션과 전투장면이 좀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책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화해가 자세히 묘사되는 부분이라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획일화 된 체계를 깨부수는 모습은 찾을 수가 있다.

 

 나니아 연대기 원작에 대한 한겨레 신문사의 평을 보면 나니아는 판타지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구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거짓이 가득한 세계에서 위대한 창조자 아슬란만을 믿는 이들이 새로운 나니아를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전투>는 종교적 세계관을 물씬 풍긴다.’ 라고 했다. 나니아 연대기가 종적인 색체를 띄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작가인 C.S. 루이스의 일생과 종교관도 관련이 있다. 루이스는 30세 이전까지 무신론자였으나 30대에 들어 독실한 카톨릭주의자로 변모하게 되었고 카톨릭에 대하여 설파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책 속에서 아슬란은 모험중인 4남매에게 나타난다. 하지만 아슬란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이가 가장 어린 루시 뿐이 었고, 다른 일행들은 아슬란을 알아보지 못했다. 성당이나 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활한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어보기 전엔 믿지 못하겠다던 사도 토마(도마)의 일화가 떠오를 것이다.

 

또한 아슬란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일행들과 함께 텔마르 인의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아슬란을 본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아슬란을 따르거나 혹은 그를 거부 하고 도망치거나. 아슬란을 따르는 이들은 젊음과 기쁨을 얻고, 병이 치유된다. 또한 아슬란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으로 포도주가 카톨릭과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임을 알면 아슬란이 예수님을 형상화한 것임을 바로 알 수 가 있다.

 

물론 이런 종교적인 면 이외에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윤리적인 면이 나타난다. 캐스피언 왕자가 스스로가 해적출신의 후예임을 알게 되어 아슬란에게 자신이 명예로운 혈통이기를 바랬다고 말하자. 아슬란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아담 경과 이브 부인의 후손이다. 이는 가장 비천한 거지의 신분이라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게 할 만큼 명예로운 일이며,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도 부끄러워 어깨를 숙이게 할 만하다는 뜻이다.” 즉 모든 사람이 아담과 이브의 후예 이기에 모두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나니아 주민들을 박대하던 텔마르 인들을 몰아내고(현실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나니아 주민들과 화합하려는 이들만 남게 되는데, 기존의 나니아 주민은 인간이 아니다. 이들은 켄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 , 오소리, 거인, 난쟁이, 생쥐 등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세상에서 상대의 다름을 틀림이라 외치는 이들은 이 동화책부터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과 영화가 마냥 교훈적인 것은 아닌 듯 하다. 책과 영화를 보다 보면 놀랍기 그지 없는 것들이 있다. 10대에 불과한 페벤시가의 4남매가 마치 중세시대의 전사인 마냥 적에게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날리며 상대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리고는 사람을 죽였다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은 20세기 초중반을 살아간 영국의 10대들로 지금의 10대들처럼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된 영화나 만화를 접하고 자란 세대도 아니다. 하물며 잘 훈련된 군인들도 전쟁을 치르고 나면 전장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을 하는 등 큰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들은 태연하다. 아슬란이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일까? 혹은 이들은 나니아를 현실이 아닌 어쩌다 한번 모험을 겪고 오는 가상세계쯤으로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수백, 수천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 라고 했던가 이 책의 작가 C.S. 루이스는 이들 4남매를 나니아 세계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10대 소년소녀들에게 텔마르인 수백을 죽이게 했다. 괜시리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재미있게 감상했으니 C.S. 루이스과 아담스 감독에게 감사해야겠다. 2010년이면 3새벽 출정호의 항해가 개봉하니 기다려 볼만 하다. 그나저나 또 한가지 걱정이 앞선다. 7편 모두가 영화화 된다면. 7마지막 전투는 너무나 환상적이고 막장인 면이 많은데 이건 또 어떻게 영화화 하려는 걸까?



B받은 리포트..  마무리부분이 미숙하다던가..

'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선들의 대한민국 - 우석훈  (0) 2009.10.12